강호순은 1969년 10월 10일 충청남도 서천군 시초면 시골마을에서 태어났다. 5남매 중 셋째다. 서천에서 초·중등학교를 다닌 뒤 1989년 충청남도 부여군의 모 농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고교 생활기록부에는 "용모가 단정하고 성실하다"고 적혀 있었다. 학업 성적은 중상위권이었다. 부사관으로 군에 입대했던 그는 휴가 기간에 소를 훔치다 붙잡혀 불명예 제대했다.
강호순은 1992년부터 2005년까지 결혼 네 번을 해서 아들 셋이 있다. 22살 때 결혼한 첫째 부인과의 사이에 16살과 14살 난 두 아들을 얻었고, 두 번째 부인이 낳은 막내(8살)가 있다.1998년경 첫째 부인과 헤어진 강호순은 두 아들을 데리고 화성시 비봉면 양노2리로 이사왔다. 1년 뒤에는 둘째 부인과 재혼하였으며, 2년여를 더 살다가 둘째 부인이 임신할 무렵 다른 곳으로 이사를 떠났다. 그가 살던 곳은 첫번째 살해 피해자가 암매장된 곳에서 2km가량 떨어진 곳이다.
2005년 10월 30일에는 자신의 집에 화재가 나 네 번째 부인과 장모가 숨졌다. 당시 경찰은 3일간의 수사 끝에 단순화재로 결론냈다. 그러나 유가족의 재수사 의뢰로 6개월간 재수사를 하였지만, 특별히 새로운 사실을 밝히지 못하고 수사를 종결하였다. 2009년의 수사본부는 이 사건 역시 강호순의 방화사건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원점에서 재수사하기로 결정하였다. 또한 일부 언론들도 사건 당시 강호순의 행동에 의심점이 많음을 지적하고 있다.
강호순은 연쇄 살인범으로 2006년 9월부터 2008년 12월까지 10명을 살해했다.강호순은 재판 과정에서도 7명에 대한 살인은 인정했지만, 2005년 10월 30일 장모집에 불을 질러 장모와 넷째 부인을 살해했다는 혐의는 강력하게 부인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2005년 장모 와 전처 존속살인 방화 사건 과, 2006년 강원도 정선군청 윤모양을 살인 추가 자백을하고 범행사실 인정과 범행동기를 비추어 보자면 반사회성 범죄에 해당하여,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 할 필요가 있다며 강호순에게 사형을 선고했다.